ㅈㅅㄹ

사실 TV 자체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가수다의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는 걸 이래저래 주워 들으면서도 막상 찾아 볼 생각까진 없었다가 주말에 VOD 다시 보기를 통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나는 가수다 3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프로그램의 비극은 하나의 쇼프로를 여러 사람이 엇갈린 스펙트럼으로 바라본 정체성간의 충돌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 이름부터 좀 어색하다. 나는 오히려 나는 편곡자다라는 이름을 이 프로그램에 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가수가 원곡을 재해석해서 부른다라는 취지 자체는 상당히 마음에 들지만 그 재해석에 실제로 "가수"는 (적어도 메인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는 데 유감이다. 뭐 가수라는게 주는 곡 받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 1 순위로 치는 넓은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는 가창력이란 놈으로 잘 불러주면 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라면 내가 유감을 표시하는 게 잘못된 것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개인적인 감상으로 이 TV쇼는 얼마나 편곡자가 가수에게 곡을 잘 맞춰서 주느냐라는걸로 경합을 하는 듯 했다.

게다가 탈락자를 판단하는 걸 대중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취지 자체는 쓸만했지만 표본이 너무 적기도 하고 단순히 맘에 드는 사람을 찍으세요라는 문제에 대한 답이 일관적인 기준에 의해 제공되지 않는 다는 점 또한 이 비극에 불씨를 던졌다. 사실 다른건 몰라도 윤도현의 개그쇼가 압도적인 표를 통해 1위를 기록했다는 걸 보면 단순히 내가 이상한건가 대중이 이상한건가라는 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붉은 악마 응원곡 가져와서 부른 것 밖에 없지만 스스로를 rock-oriented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나 항상 그대를을 결국 락으로 어레인지 했지만 참 뭐랄까....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너무나도 조잡했다. 그런데 이게 압도적으로 1등. 나만 그런가 생각하기엔 나완 다르게 대중음악 친화적인 여친께서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어 해서 꼭 내가 이상해서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온오프상에서 질타란 질타는 다 얻어 맞는 김건모의 곡은 사실 적당했다고 보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중간 정도의 성적은 거뒀다고 생각한다. 박정현 편곡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어레인지도 쓰레기이고 디테일도 거지같고 게다가 완전 보컬이 따로국밥으로 노는 곡이라 참 머쓱했고, 이소라의 경우는 뭐랄까 감흥도 없고 음도 삑사리 나고... 가창력 선호사상을 생각해서 박정현 탈락은 좀 무리수고, 난 이소라가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정말 어레인지를 잘 해낸 김범수의 곡은 사실 디테일 면에서도 훌륭하고 리메이크 된 곡만의 훅도 잘 살려서 꽤 괜찮은 곡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이게 압도적으로 1등이 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이건 위에 말했지만 국내가요 친화적인 여친도 인정. (표본이 딸린다고 뭐라 하신다면 그냥 개소리에 뭘 바라시나요 그저 웃지요)

김건모가 마지막 립스틱 퍼포먼스를 안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달라진다고 해도 비극이고 안 달라진다고 해도 비극이다.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예능으로 본 김건모의 퍼포먼스를 음악 프로그램으로 보고 "으아니~ 저놈이 신성한 음악프로에서 장난치네"라고 저평가한 대중간의 견해 충돌이 되거나, 정말 대중의 판단 기준이 (내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말이다. 편곡의 완성도도 아니고, 가수의 소화력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능력도 아니고,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소위 조선락에 대한 컴플렉스라도 영향을 준건가? 아니면 무대에서 방방뛰면 우와 쟤 무대 매너 짱~ 이렇게 생각하는건가. 윤도현씨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28%였나로 1등했단 얘기를 들었을 때 내 기분은 이랬다:

 

 이 프로그램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았으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좀 더 확실히 했어야 했다. 예능인지 음악프로인지 스스로도 시종일관 헷갈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출연자는 물론이고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사람들도 일관된 가치로 판단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 덕분인지 다른 회차는 안봐서 잘 모르겠고 적어도 3회의 경우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 그것도 나름 흥미롭긴 했다. 윤도현의 웃음 파트를 지나 박정현의 머쓱함, 김범수의 훅, 그리고 이소라의 지루함으로 진행하다 다시 윤도현 압도적 1등의 괴기 파트로 돌아와서 마무리는 난감함으로 해주는 센스.

알게 된 건 돈스파이크가 상당히 잘 한다는 사실 하나. 그래봤자 리메이크 여왕 에이모스 누님 오면 그냥 다 버로우 해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