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퀴시(Vanquish) : 일본과 북미의 게임 만들기
겨울 시즌도 저물어가고 있고, 혼자 있을 때 시간 죽이는데는 게임만한게 없어서 다시 먼지 쌓여가던 삼돌이 먼지 좀 털고 가동해 보고 있다. 최근들어 뱅퀴시(Vanquish)라는 세가 게임을 하나 사서 플레이 해 보고 나니,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일본과 북미의 게임 만들기에 대해 뭔가 적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버에 일본어와 국내 심의마크가 동시에 있는 그림을 10년 전쯤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엑박의 최대 효자인 기어워(Gears of War) 시리즈와 비슷한 TPS 게임이다 (심지어는 버튼 배치도 거의 비슷하다!!!) 단지 다른점이 있다면 묵직한 움직임 대신 부스터를 이용한 빠른 움직임과, 맥스 페인(Max Payne)의 불릿 타임을 이용한 적절한 연출, 거기에 (세가의 드캐시절 쉔무에 가장 먼저 나왔던 건지 헷갈리는데) 커맨드 액션이라는 것이 추가되어 독창적이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액션성을 구축한 것 정도? 다만 플레이 하는 내내 일본식 게임만들기와 북미의 게임만들기의 차이점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1
가령 이런거다. 기어워나 COD Modern Warfare 같은 북미 게임을 하다보면 특정하게 플레이어에게 알려줘야 할 전장의 상황 변경이나 새로운 인물의 등장, 혹은 제거해야할 최우선 목표등에 대해 분명히 컷씬이 들어가지만 그걸 실제로 결말 짓는 건 플레이어 자신이다. MW2에서 헬기로 탈출하는 씬이야 말로 가장 적절한 예이지 않을까.
지붕이 부서지고 떨어져 기절한 플레이어에게 자신을 잡으러 오는 병력의 실루엣을 보여주며 달리라는 무전까지가 정확하게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없는 컷씬이고, 그 후 열심히 목표지점을 따라 달려야하는 것은 게임을 플레이어하고 있는 나 자신이다. 사실 이 스테이지를 처음 플레이할 때도 목표 지점을 따라 열심히 달리는 것 뿐이고 딱히 길을 외워야 한다거나 하는 난이도가 있는 그런 것은 아니므로 첫 시도에서 대체로 클리어하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적절한 한스 짐머의 배경 음악을 들으면서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는 그 상황 자체에 꽤나 긴장감을 느끼게 되어 게임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당연히 일본 게임은 이런 방식이 아닐 거란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메기솔3의 중간 컷씬을 보자면...
오프닝 무비도 아니고 중간 컷씬이 러닝 타임이 6분이다. 6분!!!! 그러니까 이 6분이란 시간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람이 패드를 살포시 내려놓고 멍청하게 티비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이 장면을 굳이 북미식으로 바꿔본다면 물에서 빠져 나오는 것 자체도 플레이어에게 제어권을 넘길테고, 그리고 구역질 좀 하고 나서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해서 좀 주변을 걸으면서 위의 무전 교신을 하고 폭포 얘기가 나오면 Objective로 폭포로 가기 이런게 떠서 거기로 간 후에 오토바이로 폭포수를 뚫고 들어오든지 뭘 하든지 하는 연출이 나오는 것이겠다.
바이오쇼크에서 랩쳐 입구까지 헤엄쳐서 승강기를 타는 것 까지는 플레이어의 조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사실 이런 컷씬으로 먹고 사는 게임의 끝판 대장은 따로 있다.
컷씬의 컷씬에 의한 컷씬을 위한 게임이 되어버린 파판 시리즈.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컷씬 하나로 상황 종료. 플레이어의 개입이라곤 전혀 없다. 그래도 파판 시리즈는 장르 자체가 액션은 아니니 이런 컷씬이 가져올 수 있는 게임의 몰입 방해에 대해선 그다지 지장 받지 않을 수 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
다시 뱅퀴시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사실 뱅퀴시의 컷씬 자체는 위의 극악무도한 게임들보단 훨씬 상냥하다. 단지 계속되는 액션 커맨드와 자잘하게 나오는 (그리고 어떤 건 그 자체로 챕터를 종료시켜버리는) 컷씬을 상대하고 있다보면 적잖히 지칠 때가 있다. 게다가 컷씬에서 주인공 캐릭터는 지금까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여러가지 액션을 사용해서 순식간에 상황을 종결지어 버린다(!)
나는 굳이 북미의 게임 만들기가 절대적으로 올바른 게임 만들기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액션 게임에서 패드 놓고 몇 분간 화면만 쳐다본다거나, 위 동영상의 18분 지점처럼 컷씬에서 적 비행선 둘을 알아서 정리해 버리는 것 따위가 재미 있지는 않다. 이런 컷씬들이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액션 커맨드를 수시로 집어 넣는 연출은, 게임의 재미를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반감시키는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보스 타입 3가지로 5개 챕터 수십개 미션을 우려먹는 것따위는, 나름 나쁘지 않은 액션성을 가지고도 플레이 체감을 상당히 떨어뜨린 이런 짜증나는 연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중간에 간지나는 컷씬 동영상 하나 집어 넣어서 주인공 뽀대 좀 살려주는 그런 시대는 프리렌더한 동영상 대신 리얼타임 스크립트 무비를 컷씬으로 집어 넣을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때 이미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게임 내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조악하지만 플레이어가 헤쳐나가게 할 수 있는 그런 북미 게임의 연출을 일본 게임들도 이제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컷 씬(cut scene)과 함께 갑자기 특정 커맨드를 입력하도록 해서 정확한 입력을 했다면 계속 진행을, 그렇지 않다면 데미지를 입거나 게임 오버 상황을 연출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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